이본

 

1학년

 

 

이본 카일리 11

아무튼, 이걸 채우면 된다는 거잖아? (대뜸 아무나 붙잡는다.) 얘, 너 이름이 뭐라고?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미미! 미미야. 너는? 아까 듣기로는 대충 우아한 느낌이었는데. 뭐였지? 엘렌? 에블린?

 

이본 카일리 11

우아하다라, 마음에 들었어. 이름을 틀린 것 정도는 넘어가 주지. 카일리의 이본이란다. 이제 똑똑히 기억해 두도록 하렴. (제 양피지 꺼내 툭툭 두드린다.) 자, 이름이 깜찍한 미미. 보상이 뭔지 몰라도 나는 그걸 꼭 받아야겠거든. 너 꿈이 뭐니?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맞다, 거의 끝이었지. E가 아니라 Y였겠구나. (어차피 같은 내용이 적힌 양피지란 것 알면서도 바짝 붙어 들여다본다.) 어…… 잘 모르겠는데? 행복한 사람이 되기? 영국 총리? 세계 여행하기? 매일 달라져서 정하기 힘든걸. 이본 너는?

 

이본 카일리 11

무슨 꿈이 그렇게 많아? 영국 총리는 또 뭐구.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지만, 그건 너무 거대하지 않나? 뭐, 그런 의미에서는 슬리데린이랑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여긴 꾀 많고 욕심 많은 사람이 오는 기숙사라잖니. 모자가 네게 뭐라고 했을지 궁금한걸. (으쓱인다.) 난 당연히 부자지. ⋯물론 지금도 부자지만, 더 큰 부자가 될 거야. 세상에 부자만큼 좋은 꿈은 없으니까.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나쁠 거 없잖아! 꿈꾼다고 누구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진짜 영국 총리가 되면 내가 사인해줄게. 같은 기숙사 의리로! 모자가 '친구'를 원하면 여기가 가장 좋을 거랬거든. (킥킥 웃으며 자랑스럽게 팔 벌린다.) 부자가 왜 가장 좋은 꿈인데? 부자가 되면 기분이 좋은가?

 

이본 카일리 11

됐어, 영국 총리의 사인 같은 걸 마법사가 받아서 뭐 하니? 네가 마법 정부 총리 같은 게 되면 몰라두. 오늘의 꿈을 마법부 총리로 하겠다면 네 친구가 되어줄게. (빙글 웃는다.) 어머? 당연한 질문을 하네. 세상에 부자만큼 대단한 게 또 어디있다구. 돈만 있으면 모두가 날 우러러보는걸? 남과 비교해서 불행해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미래에 부자 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지 않아?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아니, 마법 정부가 따로 있는 거야? 총리도 또 따로 있고? 끝내준다! 큼큼, 나 미미 파블라디스는 오늘의 꿈을 '마법부 총리'로 결정할게. 친구 해줘! (냉큼 기회 잡는다.) 하긴, 돈이 많으면 스티파도를 평생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불행하긴 어렵겠지…. 엄청난 부자가 되면 뭘 사고 싶은데? 그런 건 딱히 없어?

 

이본 카일리 11

어머? 당연한 소릴. 머글들과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까, 정부도 따로 둬야지. 그런 반응을 하는 걸 보니, 너 머글 태생이구나? (자, 하고는 대뜸 손 내민다. 악수하자는 듯.) 글쎄? 그런 건 생각 안 해봤는데. 그때는 정말 뭐든 살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걸 가질 수 있겠지. 네 사인 팔아다 돈 벌어야겠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아마도 그런 것 같아. 혹시 그거 좀 별로니? 머글 태생이란 것 말이야. (대수롭지 않게 물으면서 손잡고 흔든다.) 와! 그럼 네가 가져다가 팔 수 있게 백만 장쯤 사인할게! (희소가치 따위 알 리 없는 나이다. 히죽댄다.) 대신 네가 부자가 되는 일에 일조한 거니까, 나한테 멋진 마법 장난감 하나 정도는 사다 줘. 아니면 달지 않은 쿠키 세트도 좋고!

 

이본 카일리 11

아마 아닐 거야. 난 머글들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으니까. 우린 같은 기숙사니까 같은 편이기도 하구! (아는 게 없으니 싫어할 이유도 없다. 그럼 한 장은 내가 가져야지. 실없는 소리 하며 키득거리기나 한다.) 얘, 부자 친구 두고 원하는 게 너무 사소하지 않니? 조금 더 비싼 걸 원해볼 수도 있잖아. 가령⋯ 음, 어떤 저주받은 마법사가 평생 하고 다니던 반지라거나, 위대한 마법사가 세상에 딱 하나 남긴 유산인 지팡이라거나. (그런 게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다행이네! 그럼 안심하고 머글태생 해도 되겠다. 같은 기숙사니까 같은 편! 이거 좋은 말인데~ 그럼 다른 기숙사 애들은 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아까 기숙사 점수를 표기한 모래시계를 봤어. 아직은 모두 점수가 같던데. 분발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위로든 아래로든. 덧붙이며 어깨 으쓱인다.) 세상에 딱 하나 남은 지팡이는 별로. 우리 파트라가 슬퍼할 거야. (파트라는 제 지팡이 이름이라며 주머니 뒤적여 꺼낸다.) 게다가 저주받은 마법사가 평생 하고 다니던 반지라니, 그건 진짜 별로 안 탐나는데……. 반지를 끼면 저주가 옮을지도 모르잖아. 평생 그리움에 빠져 시름시름 앓게 된다든지. 너 악세사리 좋아해?

 

이본 카일리 11

그렇게 되나? 첫 학년을 일등으로 끝낸다면 기분 좋은 출발이 되기야 하겠지.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던데⋯ 좋아, 분발하자. 당연히 위로! (어쩐지 의기 충전되었다. 일단 수업을 빼먹지 말아야겠다. 당연한 소리나 덧붙인다.) ⋯지팡이에 이름은 또 언제 붙였대? 얘, 그런 게 다 골동품이라고, 골-동-품. 웃돈을 주고도 수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주 드글드글할걸? 골동품도 악세사리도 가져서 나쁠 게 없지. (좋아한다는 뜻이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당연히 위로? 하지만 이본, 기숙사 점수가 깎이는 것도 아주 나쁘지만은 않아. 그건 꽤 끝내주는 장난을 쳤단 말도 되니까…. 나도 수업을 빼먹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기분 좋지 않겠어? (은근히 주장하며 설득하려 든다.) 지팡이야말로 켄드릭의 표현을 빌려 '전우'잖아! 그럼 당연히 소중히 해줘야지. (지팡이에 뽀뽀하는 시늉―진정 하지는 않았다―한다.) 그럼 이본 네 크리스마스 선물은 악세사리로 해야겠다! 아니면 달리 더 좋아하는 건 없어? 골동품은 아무래도 내 취향이 아니라 고르는 맛이 안 날 것 같단 말이지.

 

이본 카일리 11

예를 들면? 한 해를 장식하는 기숙사 컵과 맞바꿀 정도라면 말도 안 되게 끝내주는 장난이어야겠는데. (네가 하는 양 보고는 멀린. 감탄사 뱉었다.) 전우는 무슨, 지팡이가 그냥 지팡이지. (장담컨대, 만일 이본 카일리의 지팡이가 조금이라도 더 소심했다면 이 대목에서 심이 시들어 버렸을 것이다.) 어머,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주려구? 골동품은 어차피 나이에 어울리지 않으니 됐어. 가격은 상관없으니까,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그냥 아무 악세사리나 선물해 주라. 이러면 네가 뭘 고를지 궁금해졌거든. 으음, 나도 받고만 있을 순 없구. 깃펜이라도 줄까? 아니면 새 만년필? 너, 저번에 보니까 이상하게 생긴 펜을 쓰더라.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음, 당장 멋진 게 생각나지 않는데. 이를테면 모두 연회장에 들어오는 순간 탭댄스를 추게 만든다든가, 슬리데린이 아닌 사람이 입장하는 순간 “슬리데린 최고!” 폭죽이 터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니면 그냥 교수석에 이빨 달린 프리스비를 풀어놓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네 감탄사에도 낄낄거리면서 웃을 뿐이다.) 내가 만일 네 지팡이였더라면 앞으로 일주일은 삐져서 울기만 할 거야. 그럼 난 네 크리스마스 선물로 악세서리 대신 지팡이를 해야 하겠지. 지금부터 머릴 굴릴 예정이니까, 부디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 어머, 깃펜? 역시 깃펜은 좀 쓰기 어렵던데. 아, 내 만년필은 내가 직접 만들었어. 수제-깃펜인척하는만년필인척하는깃펜이지. 혹시 괜찮으면 선물을 겸해서 잉크를 추천해줄 수 있어? 글씨 교정이 도무지 안 되는데, 아마 잉크 때문인 것 같아. (그 문제가 아니다.)

 

이본 카일리 11

그거 괜찮은걸? 난 교장선생님이 훈사를 하는 순간 탭댄스를 추게 만들어 보구 싶어. 웃길 것 같잖아. (네가 이야기하는 것 들으며 상상하더니 키득였다. 이어 전교생 앞에서 탭댄스 추는 교장 선생님 상상이나 한다. 교장 선생님의 품위는 어디로⋯.) 날 선택했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난 나약한 지팡이랑 친구 하지 않아. (...) 깃펜인척하는만년필인척⋯ 뭐? 추천해 줄 수는 있지만, 내 생각에 그거 잉크의 문제가 아니야. 적당히 알아볼 정도는 되어야지, 네가 메모장에 써둔 글자 읽는 데에두 한참 걸렸다구. 너, 편지를 자주 썼지? 가족들은 잘 알아보던?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좋은 아이디어 고마워. 그런 거라면 교장 선생님의 음식에 마법을 거는 게 좋을까, 아니면 구두에 거는 게 좋을까? 구두에 걸어서 탭댄스가 시작되는 순간 빨갛게 빛나게 하는 쪽이 좋을지도. 빨강이면 심지어 그리핀도르 애들이 대신 의심받을지도 몰라. (어깨 으쓱인다. 못 말리는 열한 살에게 교장 선생님의 품위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응? 잉크 탓이 아니라고? 그럼 아무도 내 글에 댓글을 안 달던데, 그것도 못 알아봤기 때문이야? 해도 해도 너무하네! 소피아는 잘만 읽던데! 그건 그리스어라 좀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본 카일리 11

음식이랑 구두, 둘 다 하면 안 돼? 빨강도 좋은데, 다른 한쪽은 파란색으로 하자. 아니면 음식을 파랗게 물들여 버리든가. 지금 래번클로가 잘 나가는 것 같아서 좀 괘씸하거든. 이러면 둘 다 한 번에 의심받게 만들 수 있겠지! (불쌍한 교장 선생님.) 알아보는 데에만 한세월이 걸리는데 누가 댓글을 달 수 있겠어? 좀 교정해 보지 그래. ⋯그런데 소피아는 누구래? 가족? 그리스어는 또 무슨 소리구. 너 다른 나라 말두 할 줄 알았니? 어쩐지, 열심히 엿봐도 못 알아보겠더라. 글씨체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나라 말이라서 그랬던 거였다구?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오우, 좋은 생각이야. 도넛에서 파란 크림이 터지면서 ‘래번클로 만세’라고 적히는 거지. 누가 봐도 우리 짓은 아닌 것 같겠네. (이어선 제 손에 묻은 잉크를 문지르며 투덜거린다.) 그렇게까지 엉망은 아니야! 알아보기 쉽지 않다는 데엔 동의하지만…. 소피아는 우리 할머니! 집에 편지할 때는 그리스어로 적으니까 못 알아볼 만도 해! 아서도 내가 악필이라 안 읽히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너네 다 나빠. 내가 외국어 좀 할 수도 있지! ‘순수혈통’ 영국 애처럼 생기진 않았잖아. (마지막은 나름대로 블랙 조크다.)

 

이본 카일리 11

좋은걸. 그리핀도르랑 래번클로 애들 표정이 볼만하겠어. (손수건 꺼내 건네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거지. 어떤 교수님이 너무 바쁜 나머지 네 글씨를 못 알아보겠다면서 과제를 퇴짜 놓으면 어쩌니? ⋯ ⋯이건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프지 않게 딱밤 때린다.) 할머니까지 같이 사는 거니? 그럼 너희 가족끼리는 그리스어로 얘기해?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이거 써도 되는 거 맞아? 너무 부드러운데. (아깝단 투다. 손수건 받고도 조금 망설인다. 딱밤 맞은 곳 문지르느라 금세 정신 팔렸지만. 괜히 엄살이다) 아아! 너무해!! 교수님들은 우리 과제를 열심히 보실 의무가 있다고. 글씨가 엉망이란 이유로 보지 않는 건 불합리해!!! 소피아도 나한테 뭐라고 안 하는데! (입 쭈우욱 내민다.) 당연하지. 우리 집은 할머니가 중심이야. 집에선 다 그리스어로 얘기하고. 사촌들끼리 있을 땐 영어도 곧잘 하지만, 이모랑 삼촌은 영어에 재능이 없어서 말이지. 그리스어 해석할 일 있으면 나한테 맡겨! (보통은 없겠지만 말이다.)

 

이본 카일리 11

얘도 참, 손수건이 쓰라구 있는 거지. (손 휘휘 저었다.) 그야 교수님들이 보시는 건 영어구, 너희 할머니가 보시는 건 그리스어구. ⋯아니, 가만. 정말 그리스어만 정갈하게 잘 쓰구 있는 건 아니지? (그렇대도 읽을 줄 모르니 알 방도도 없지만. 오리. 괜히 툭 놀린다.) 내가 그리스어 해석할 일이 또 언제 있겠니. 룬 문자라면 또 모를까. 아, 넌 이미 언어를 두 개나 익혔으니까 고대 룬 문자 잘할지두 모르겠다.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세탁 마법은 아직 할 줄 모르니까 그렇지. (어쨌거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성미고, 두 번씩이나 사양하기엔 성격이 급하다. 잉크 문질러 지웠다.) 룬 문자라는 건 뭔데? 그것도 언어 같은 건가 보지? 너 그런 데에 관심 있었어? (선택과목 중에 그런 이름이 있는 줄도 모르니 이본의 취향이라 여긴다. 의아하게 물었다.)

 

이본 카일리 11

나두 자세히는 몰라. 그냥 그런 문자가 있구, 3학년부턴 그걸 공부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더라. 내가 딱히 그런 구석에 관심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걸로 일기를 쓰면 멋질 것 같잖아? 수업을 듣지 않는 이상은 아무도 못 알아볼 테구. 그래서 들을까 봐. (고작 그런 이유.) 넌 지금 어디에 관심이 있는데? 특별히 더 재미를 느낀다거나, 그런 거.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그럼 너랑 같은 수업 듣고 이본 일기 훔쳐 읽어야겠다. 너 맨날 일기도 적어? (하지만 열한 살인걸! 고작 그런 이유에 공감한다.) 과목 이야기라면 변신술은 과제 성적이 좀 잘 나왔어. 비행술도 꽤 재밌고…. 그 외엔 딱히. 그냥 마법이란 것 자체가 신기한 거지. 난 너희랑 노는 데에 제일 관심이 많아.

 

이본 카일리 11

뭐어? 남의 일기를 막 훔쳐보는 건 실례야! 사생활 침해라구. (본인도 편지 훔쳐본 주제에.) 몰라, 비밀이야. 매일 쓴다구 하면 언젠가 너한테 들킬 것 같단 말이야. (결국 매일 쓰고 있다는 뜻이다.) 흐음, 그럼 넌 퀴디치두 잘하겠다. 퀴디치, 아니? 시몬은 설명 듣구 나서 정신없을 것 같다더라.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너도 내 편지 봤으면서!!! (웃으면서 외친다.) 쪼~끔 정도는 보여줘도 되잖아! 설마 내 욕을 적을 셈은 아니지? 나 그래도 나쁘지 않은데! (눈 동그랗게 뜬다.) 아서랑 발레리가 설명을 좀 해주긴 했어. 설명만으로 완전히 파악은 안 되지만… 아서는 내가 퀴디치라도 해야 장난을 덜 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

 

이본 카일리 11

난 못 알아봤으니까 괜찮아. 넌 알아볼 수 있을 거니까 문제인 거지. 혹시 알아? 네가 기숙사 점수를 몇십 점씩 깎아오는 날에는 욕을 적구 싶을 수도. (무슨 논리?) 어째 어린애 체력 빼놓겠다는 소리 같네⋯. 너 방 들어가서도 장난치니?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1

오, 그런 날에도 조금은 봐줘…. 귀여운 기숙사 친구에게 그 정도 혜택은 있어야지. (윙크한다.) 장난은 안 치는데? 대신 밤새 놀아달라고 괴롭히긴 하지. 리암은 어차피 들은 체도 안 해. 여학생 기숙사 분위기는 어떤데?

 

 

 

4학년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휘적휘적 연회장에서 나간다.)

 

이본 카일리 14

나두 끼워주라. (대뜸 따라붙는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나 지금 점술 교실 폭발시키러 가는데? 열등생의 테러 행위지.

 

이본 카일리 14

그거 괜찮네, 홀트 교수님도 열등생의 설움을 좀 아셔야 해. 점술 시간만 되면 숨 막혀 죽겠다구. (농담?) 그래도 인사는 하구 가지. 우리 안 보고 싶었니?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사랑스러운 열등생 동기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군. (과장스럽게 대꾸하며 팔 벌린다.) 좋아, 그래. 이게 먼저지. 방학 동안 보고 싶었어, 이본. 한 번 안아줄래?

 

이본 카일리 14

원래 열등생끼리 통하는 게 있는 법이래. 나밖에 없지? (키득 웃고 꽉 안았다.) 어째 방학마다 조금씩 커서 돌아오는 것 같아. 뭐 하구 지냈니?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너밖에 없지. (같이 꽉 끌어안았다가 놔준다.) 이번엔 그냥 평범하게 지낸 것 같은데. 특이사항이라면 살이 좀 쪘어. 안을 때 살집이 느껴지지 않든? 소피아가 요즘 어찌나 날 먹이는지…, 호그와트에 돌아온 게 탈출로 느껴질 정도였다니까. (“내 키가 크는 게 마음에 드나 봐.” 부연한다.) 아까 보니 카일리가 한 명 더 생겼던데. 동생이야? 너희 집은 가본 적이 있어야지.

 

이본 카일리 14

하여간 가족들이랑 사이 좋아. 네가 어디까지 클 수 있는지 시험해 보시려나 보다. 나두 좀 궁금하긴 하네. 너, 처음 봤을 때는 나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이만큼 커졌으니까⋯. 얼마나 더 크구 싶니? (고개 끄덕인다.) 와봤자 재미두 없을 걸 뭐. 입학할 때가 됐다 이거지. 쟤 때문에 엄마 아빠가 내내 유난이었어. 추억을 만들어 둬야 한다나 뭐라나⋯.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소피아 키는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5cm도 안 남았거든…. 우리 집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선 키가 당장에 멈추더라도 몸을 마법으로 늘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기도 하고. (농담 덧붙인다.)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거지! 밤새 수다도 떨고 말이야. 여학생 기숙사에는 출입 금지라니,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불합리한 조항이야. 나도 같이 파자마 파티하고 싶어…. 그런데 동생이랑 딱히 친하진 않아? 추억 쌓기라면 여행이라도 다녀온 건가?

 

이본 카일리 14

너희 할머니 키가 그렇게 커? (이쪽이 좀 덜 자란 편이기는 하지만. 디미트리오스 머리 위로 대충 가늠해 본다.) 전에 그, 키가 16피트까지 크는 물약 같은 게 있지 않았나? 정 안되겠음 그거라두 마셔 보는 건? (이어 듣고는 키득였다.) 파자마 파티라니, 원하는 게 생각보다 깜찍하네. 그거 그냥 휴게실에서 하면 안 돼? 그럼 다 같이 모여 있을 수 있잖니. ⋯아니, 여행은 무슨. 집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은 죄다 하려구 그러더라. 같이 요리 만들기, 앞마당에 핀 나무 아래에서 피크닉 흉내 내기, 뭐 그런 간지럽고 바보 같은 거. 안 친한 건 아닌데 그닥 애틋하게 느껴지지두 않아서 난 영 별루였어.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오, 참고해볼게. 물론 집에서 썼다간 곧 인근 주민에게 발각되어 비밀 법령 위배로 잡혀가겠지만. 내가 아즈카반에 갔단 소릴 듣게 되면, 면회 정도는 와줘. (헛소리 섞어 대꾸한다.) 휴게실에서 하는 파자마 파티는 간지럽고 바보 같은 일에 해당 사항 없고? 너무 밀어내진 마. 동생 처지에선 웬 기숙학교에 혼자 뚝 떨어졌는데 형제가 챙겨주면 얼마나 좋겠어. 넌 가만 보면 우릴 가족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본 카일리 14

어머? 내가 그 험한 곳까지 어떻게 면회를 가니? 좀 더 좋은 식사 달라구 뇌물은 줘볼게. (으쓱인다.) 뭐, 가족과 친구의 차이지. 웬 기숙학교에 혼자 뚝 떨어진 거, 나는 안 그랬구? 내가 잘 닦아놓은 앞길 쟨 그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 세상 모든 사람이 가족을 아끼면 가족애가 그리 빛나 보이지두 않을걸?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우리 우정이 이렇게 얄팍했다고 울어야 하는 순간이야, 아니면 나를 위한 지출에 감동을 받아야 하는 거야? 너 아직도 부자가 꿈이던가? 그럼 후자에 가까우려나? (코 찡그린다.) 너한텐 우리가 있었지만 후플푸프가 슬리데린만큼 좋은 기숙사라는 보장은 별로 없고… (말이 점점 구질구질해지는 걸 느꼈는지 멈춘다.) 좋아, 그만 설득하고 네가 주는 편애를 기쁜 마음으로 누릴게.

 

이본 카일리 14

후자가 맞겠지만, 둘 다 해주면 고맙겠어. 그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거든. (멍한 얼굴 하고 듣다가⋯ 마지막 말 듣고 씩 웃었다.) 그래, 내 가족도 받지 못하는 편애란다. 마음껏 누리렴. 이젠 방학마다 집에 돌아가는 게 아니라 들리는 기분이야. 다들 이러다가 독립하게 되는 거겠지. ⋯꿈 하니까 말인데, 넌 졸업하면 어쩔지 생각 좀 해뒀니? 여기 머물지 않겠다던 애들이 꽤 보이던걸.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미안, 나 냉철한 남자라 그렇게 쉽게 눈물이 나오진 않아. (낄낄거리며 손바닥 든다.) 그건 나도 그래. 도리어 여길 집이라고 종종 부르고 있다니까? 난 독립 생각은 한동안 없어서, 아마 졸업하면 '다들 따르는 흐름'을 뒤로 하고 더럼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것 같긴 하지만. 아, 아예 머글 사회로 가겠단 소린 아니고. 어떻게 여길 두고 가니? 난 그런 결정 하는 애들이 진짜 신기하더라. 내가 워낙 꿈이 많은 것 알잖아, 이본. 아직 한 가지로 추리지는 못했어. 그래도 마법사겠지, 나는. 넌? 뭐할지 정했어? 가만히 누워서는 부자 하기 쉽지 않을걸. (악담하듯 음흉하게 웃는다.)

 

이본 카일리 14

그럼 결국 이리로 돌아오겠다는 뜻? 질린다거나, 그쪽 세계를 놓을 수 없다거나. 보통은 그런 이유 때문에 여길 포기하려는 것 같던데. '다들 따르는 흐름' 같은 게 네겐 중요한가 봐. (음흉한 웃음에 입 삐쭉였다.) 그런 것쯤 나두 알아. 너희는 모르겠지만, 여러 방면으로 노력 중이라구⋯. 아직 뭘 할지 뚜렷하게 정하지는 않았지만. 요즘은 점술을 열심히 듣는 중이지! 미래를 보는 것만큼 돈 벌기 쉬운 방법이 없잖니? (그러나 재능은 없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첫째, 절대로 마법이 질릴 리 없고, 둘째, 여길 선택한다고 왜 저쪽을 놓는 게 되지? 집에만 가도 머글들밖에 없는데. 난 마법 세계가 좋아. 특별하잖아. 넌 계속 여기 살았으니까 딱히 그런 느낌이 안 들 수도 있겠지만. (설렁설렁 대답한다.) 오, 점술가 좋지. 우리가 방금 열등생의 설움을 모의했고 지금 그 과목 강의실을 폭발시키러 가는 중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너 솔직히 예언엔 별 재능 없잖아.

 

이본 카일리 14

이쪽과 그쪽은 다른 세상이니까. 그쪽 세계에서 온 애들은 슬슬 적응이 어렵다구 고민하던걸. 내가 머글 세계에서 왔다면 딱 너같이 생각할 것 같기는 했지. 주변 아무도 가지지 못한 걸 나만 가지는 기분, 좋잖니. (으쓱인다.) 그게, 들어봐. 잘하면 성과가 나올 것두 같다니까? 얼마 전에 과제를 내구 교수님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받았다구. 어쩌면 열등생을 탈출할 수 있을지두 몰라. 게다가⋯ 이게 아니면 당장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몇 개나 되겠니. 나한테는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 같은 거 없어.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난 특기가 적응이라 괜찮아. 다른 별에 떨어져도 잘 살아남을 거란 소리만 듣고 자랐어. (으스댄다.) 오, 날 버리고 혼자 우등생이 되시겠다? 좋아, 그럼 내 점이나 봐주고 이야기해봐. (문득.) 그런데 그렇게까지 조급해할 이유가 있어?

 

이본 카일리 14

방금 그거 자랑한 거니? 네가 적응 못 해 겉도는 모습은 잘 상상 안 되기는 해. 딱 그런 면만 보면 네게 그리핀도르가 어울린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기도 하구. (빨간 넥타이 두른 디미트리오스 상상해 본다. 음, 좀 아니다. 저 혼자 결론지어 내뱉고는 픽 웃었다.) 그으래, 미래를 싸그리 봐줄 테니 긴장해. (가벼운 투. 이어선 손톱 매만진다.) 그냥, 갈수록 절실히 깨닫게 돼서 말이지. 난 가족이랑 안 맞아두 너무 안 맞는 것 같더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면 내 힘으로 벌어야 해.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하, 난 뭐니뭐니해도 슬리데린이야. 너도 날 그리핀도르에 유기할 생각은 아니지. 그러는 건 세이지 하나로 충분하다고. (꿍얼거린다.) 그냥 우릴 너무 아끼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무슨 사정이 있는 거였어? 왜 그러는데?

 

이본 카일리 14

안 그래도 어두운 기숙사, 너까지 없어지면 진짜 칙칙해질 것 같으니까 관둘래. 그런데 그리핀도르에 가보구 싶다는 생각, 정말 한 번두 안 해봤어? (손톱에 가 있던 시선 다시 들어 바라본다.) 가족들이랑 있으면 피곤한 일만 생겨. 뜻대로 흘러가려던 일이 마음대로 틀어져 버리구. 그냥 그게 전부야. 엄청 거창한 이유는 없어. ⋯너희를 너무 아끼는 것도 맞구.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맹세하는데, 단 한 번도 안 해봤어. 네가 있는 기숙사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 (띄우는 투가 가볍다.) 확실히, 그런 거면 적절한 거리감이 있는 편이 좋을지도. 우리 삼촌도 최근에 소피아한테 놀림당하는 데에 질렸다고 집을 뛰쳐나갔거든. 말로는 독립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그 뒤로 탈모가 멈춘 것 같다고 하더라.

 

이본 카일리 14

아이, 그야 그렇지만⋯. 내가 저 기숙사에 갔더라면, 같은 상상. 난 다들 한 번씩 해보는 줄 알았지. 난 참고로 1학년 때 래번클로, 2학년 땐 후플푸프가 되는 상상을 좀 해봤어. (그러니까, 매해 우승 기숙사를 따라서⋯.) 탈모⋯ 너희 할머니가 그 정도로 장난이 심해? 넌 할머니를 빼다 박았나 보다. 편지를 왜 그렇게 자주 주고받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좀 가네. 보통은 아무리 애틋해두 달에 몇 번 주고받는 데에서 그치니까.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3학년 때는 슬리데린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하셨겠군. (규칙 파악했다. 하! 웃는다.) 어, 그냥 미미 파블라디스 머글 여성판이야. 애틋하지 않고선 못 배기지…. 게다가 소피아가 마법 세계 얘길 좋아하거든. 솔직히 말해선, 그냥 내가 여기에 적응해나가는 이야길 반기는 것 같아. 드루블즈 풍선껌에 반한 것도 맞긴 하지만.

 

 

 

이본 카일리 14

시시해. (교재 대충 챙겨 나간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폭파하는 건 좋아할 줄 알았더니?

 

이본 카일리 14

폭파두 폭파 나름이지. 저건 왠지 소름 끼쳤다구. 넌 안 그러던?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약간? 그래도 좋게 좋게 생각하는 중. 여기 호그와트잖아. 설마 무슨 일 있겠어.

 

이본 카일리 14

나두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애들이 날 서 있더라. 모르긴 몰라두 영 심상찮긴 했지. (그리고 창밖 빤히 본다⋯.) ⋯교수님이 버린 그 지팡이, 비쌀까? 주워서 복구라두 해볼까?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사춘기라 그래. (대충 뭉갠다. 주머니에서 개구리 초콜릿 박스 하나 꺼냈다.) 너도 하나 먹을래? 단 거 먹으면 기분 좀 나아진다던데. (그리고 따라서 시선이 돌아간다.) 그럴까? 밖에 바람 불던데 조각 없어진 게 아닌지 몰라. 나중에 비싸게 받고 팔려고 그러지, 너?

 

이본 카일리 14

너 단 건 안 좋아하는 편 아니었니? 어쩐 일로 가지구 있대. (먹을래. 하고 끄덕인다.) 얘, 그런 건 모르는 척 해줘야지! 저학년들한테 돈 좀 받구 팔면 괜찮을 것 같았단 말이야. 아직 뭣 모를 때 잔뜩 이용해먹어야지. 중고이긴 하니까, 한⋯ 육 갈레온쯤 하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찾으러나 가볼까?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내가 안 좋아하니까 안 먹고 들고 다니지. 이런 거 한둘로 기분이 살살 녹는 애들도 많다고. 카드 구경이나 하자, 누구 나왔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는다. 복도 빙 둘러 정원 방향으로 걷는다.) 이왕 뜯어내는 거 더 받아. 10갈레온은 받아야지. 나름 있어 보이는 이름이잖아, 부상화 지팡이라니. [개구리 초콜릿]

 

STORE

개구리 초콜릿과 함께 동봉되어 있는 카드를 꺼내보면... 덩컨 크로커가 나왔다. 덩컨 크로커: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장. 불사조 기사단의 창립자 중 한 명.

 

이본 카일리 14

뭐야, 교장 선생님이네. 아이락 풀케나 발렌타인 글렌피딕이 나오려나 했더니. 너두 이참에 모아봐, 미미 카드는 어떻게 나오려나 보게. (바닥 꼼꼼히 살피며 뒤따른다. 나무 조각 비스무리한 게 보이면 한 번씩 흠칫거린다.) 알고 보니 아이락 풀케의 지팡이였구 말이지. 10갈레온으로도 안 되겠다. 적어두 몇십 갈레온은 받아야지. ⋯좋아, 지금 아주 간절해졌어.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아, 나 예측할 수 있어. 미미 파블라디스. 적발의 귀엽고 잘생긴 남성. 슬리데린에 재학 중인 마법사로, 다재다능하며 몹시 사랑스럽다. (나불댄다. "그런데 진짜 모으기는 하려고. 나도 내 카드 나눠주고 싶거든. 넌 관심없어?") 육십만 갈레온까진 받아도 되겠는데, 그런데 후배들 말고 녹턴 앨리에 팔아야겠지. 아마 그리고 나선 불법으로 잡혀갈 거고. (함께 샅샅이 살핀다.) 안 보이는데? 교수님이 회수해갔나?

 

이본 카일리 14

뻔뻔하기로 네가 일등인 건 알겠다. 나두 모을 거야, 카드에 내 사진이 붙은 꼴을 꼭 봐야겠거든. (당연하게도 지팡이 조각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잔디밭에 털썩 앉는다.) 아니면 오러들이 회수해 갔거나. 들었니? 신문 기사가 나오더니, 이젠 아이락 풀케가 진짜 부활했다는 소문까지 도는 것 같더라.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그 사진이 언제 찍혔을지 찝찝하진 않아? 난 혹시나 잘생기지 않은 얼굴로 박아둘까 봐 노심초사한데. (농담한다. 마찬가지로 잔디밭에 풀썩 눕는다.) 그것도 일리 있다. 근데 누가 그런 이야길 해? 마법사들도 진짜 신기하다니까. 누군가 부활한다는 소릴 진짜 믿는다니…. 신도 아니고.

 

이본 카일리 14

으응? 듣고 보니까 좀 찝찝한 것 같기두⋯. 그래도 괜찮아, 난 모든 순간이 완벽하니까. (⋯.) 호그스 헤드에서, 누군지두 모르겠는 손님들이. 어쩌면⋯ 부활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수도 있지. 사실 아이락 풀케가 확실히 죽었는지도 불분명했으니까 말이야. (턱 괴고 바라본다.) 어떻게 생각하니? 그게 진짜면 너도 썩 안전하진 않아.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내가 걱정돼, 이본? (웃는다.) 괴물책이랑 싸우다가 병동에 입원도 해봤는데, 이번엔 그래도 사람이잖아. 호호 할아버지가 무서울 거란 생각은 안 드네. (도리어 두려운 것은 아이락 풀케가 아니라, 그 뒤로 따라올 것들이다. 입 다문다.) 정 안 되면 네 뒤에 숨지, 뭐. 넌 순수 혈통이잖아.

 

 

 

이본 카일리 14

단순한 소동이래두 이상하다구. 그거 분명 그 교수님이 부수자고⋯⋯ ⋯아니, 복권 조작 논란? 지금 장난해? (신문 구긴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너 설마 그거 샀니?

 

이본 카일리 14

⋯⋯⋯모으기만 했어, 조금. 아니, 부엉이가 자꾸 나한테 복권을 물어다 주잖아. 매일 열네 살에 자산 육천만갈레온 대부호가 되는 꿈만 꾸고 살았는데 갑자기 이게 뭐야! 어쩐지 꽝만 나오더라. 넌 관심 없니? 이것저것 써있던데. (구겨진 신문 다시 펴본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그럼 저번에 육천만 갈레온 탔단 사람은 뭘까? 같이 사기 친 사람? (뒷목 주무른다.) 소원의 돌 이야기는 좀 찝찝한 수준이고, 호그스 헤드 신제품은 내 입맛에 안 맞을 것 같아서 별로. 그리고 이달의 우수 마법사는 그다지 우수하지 않던데.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자, 나랑 데이트할 기회를 준다. 어디 갈래???

 

이본 카일리 14

호그스미드에 왔으면 프랭클린 박스부터 가줘야지. 주워들었는데, 신상품 나왔다더라.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신상품? 진짜? 그런 걸 내가 놓칠 순 없지. (냉큼 달려나가다가, 쪼르르 돌아온다.) 얼른 가자, 오늘 너무 춥다.

 

이본 카일리 14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다시 돌아오는 모습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러게 더 따뜻하게 입고 오지 그랬니? 감기라두 걸리면 또 후추 잔뜩 뿌려진 약부터 마셔야 할 텐데. (가게까지 얼른 도착해 문 열고 들어간다. 매대 대충 둘러본다.) [프랭클린 박스] 난 저게 좀 마음에 들어.

 

SYSTEM

[늘어나는 귀: 2 갈레온] 몰래 엿들을 수 있는 장난감 귀.

 

 

 

이본 카일리 14

또 지겨운 방학 반복이구나. (뒤늦게야 짐 싸러 간다. 느릿느릿…)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보고싶을 거야, 이본.

 

이본 카일리 14

마찬가지야, 요 귀염둥이야. 보구 싶어서 어쩌지? (킥킥 웃고 콕 찌른다.) 다음 학기에 만나.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4

참아야지, 별수 있나. 편지 정돈 해줘. (콕 찔려준다.) 어, 9월에 봐.

 

 

 

7학년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신입생들에게 인사하길 잠깐, 테이블 돌아다니면서 빵 집어 먹는다.)

 

이본 카일리 17

앉아서 먹어, 정신없으니까. (손 턱 내민다. 나도 하나 줘 봐.)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손바닥 위에 올려주고 옆자리 냉큼 차지한다.) 오늘도 새침하네. 보고 싶었는데, 개학 기념 포옹은 어디 갔어?

 

이본 카일리 17

(건네준 것 입으로 바로 베어 문다. 체통도 없이.) 그놈의 포옹, 매번 거절당했으면서 지겹지도 않아? 네 얘기나 해봐. 애인이랑은 진작에 헤어졌던 것 같고⋯ 뭐 하고 지냈니, 더럼에서.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어렸을 땐 자주 해줬잖아, 그리워서 그러지. (자연스럽게 손 털고 우유 잔 밀어준다.) 음, 실연의 상처를 달래기? 평소랑 비슷했어. 사촌들이란 시시덕대고, 축구하고, 바다에도 가고. 성년이 된 기념으로 학교 밖에서 마법도 좀 써봤지. 그래 봐야 방안에서 프리스비 좀 만진 게 다지만.

 

이본 카일리 17

그건 그만 그리워해. 걘 가짜야, 내가 진짜고. (우유 한 모금 마신다.) 실연의 상처 달래는 것 치곤 지나치게 일상적인데. 보통 청승맞게 비 맞고 돌아다니거나, 친구 붙잡고 내리 울거나⋯ 그러지 않나. 재미있었어? 집에서.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걔도 진짜고 너도 진짜야. 뱀이 허물을 벗었다고 허물이 허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구질구질 댄다.) 청승맞게 비 맞으면서 물놀이를 하긴 했어. 안타깝게도 내리 울지는 않았군…. 일일이 울기엔 너무 냉철한 남자라니까. 뭐, 차일 줄 알았으니까 슬프지도 않은 거지. 재밌기만 하던데. 넌? 물어보면 또 끔찍했다고만 할 거야?

 

이본 카일리 17

허상이 되지는 않지만 결국 버려진다는 점에선 별로 다를 것도 없지. 포옹이면 만족하겠어? (빤히 본다.) 냉철한 게 아니라, 진심을 안 쏟은 건 아니고? 이상하네, 분명 이상적인 연인처럼 보였는데. 알면서 뭘 물어. 끔찍하거나, 좀 덜 끔찍하거나. 나한테는 둘밖에 없어. 이번엔 후자였지. 졸업할 생각을 하니까 기운이 좀 나더라고.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버리든 챙기든 네가 하는 거야. 남들이 하는 게 아니라. (타박하다가도 팔 벌린다. 응.) 사람 마음이 생각처럼 되나? 그랬으면 좋았겠다. ‘이상적’이란 표현은 듣기에 재밌긴 하네. 진짜 그랬으면 헤어지지도 않고 결혼도 했겠지. 네가 밀리랑 알고 지낼 것 같진 않지만, 걔한텐 그 소리 하지 마. 성질 낼걸. (좀 웃는다.) 그나마 차악이었다면 다행인데, 사유가 하필 졸업이네. 졸업해도 연락 끊지 않을 거지?

 

이본 카일리 17

나를 구성하는 게 나 혼자일 수는 없어서 말이지. 넌 그 껍질 꽤나 마음에 들었나 봐? (허. 웃음 흘리곤 가볍게 포옹한다.) 그럼 왜 사귄 거야? 밀리 홀랜드랑 친분이나 좀 만들어 둘걸 그랬나, 어차피 그전에 끊겼겠지만. (으쓱.) 봐서. 난 원래 내 밑바닥 아는 것들은 죄다 두고 떠날 생각이었어. 모두와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어린애 같은 기대를 품고 있는 건 아닐 거 아니야.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다들 좋아하길래. (토닥이고 놔준다.) 너한테만 하는 말인데, 순수혈통이란 타이틀에 환상이 좀 있어서. 편리하기도 하고. 홀랜드가 되어도 내 배경이 바뀌진 않았겠지만 말이야…. (눈썹 역으로 휜다.) 모두 알고 지내고 싶다는 욕심은 있지. 게다가 너한테 버려지는 건 꽤 속상할 것 같다고. 나 정도면 쓸모 있지 않나? 제발 재고 좀 해봐. 열일곱은 어린애로 안 쳐주나?

 

이본 카일리 17

다들 말고, 네 생각. 넌 가만 보면 남들에게 너무 맞춰주려고만 해. 그런 면만 보면 네가 혈통에 관심 가지는 것도 썩 의외는 아니긴 한데⋯ 그래도 신기하네. 불순했던 의도 치고 다음이 없는 면까지도. (망토 추스르곤 다시 빵 입에 넣는다.) 무슨 쓸모. 내 거짓말에 동조라도 해주고 다니게? 나 아직 내 미래도 모르겠어, 지금 같은 때 무슨 확신을 해봤자 듣기 좋은 소리 이상의 의미는 못 될걸.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그게 내가 바라는 일이니까! 시간이 얼마 없어, 이본…. 우리가 슬리데린에서 만난 데엔 이유가 있지. 난 얼른 성공을 보여줘야 하고, 그걸 위해선 남들한테 맞추는 건 일도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남한테 의존하는 것보단 내가 해내는 게 낫잖아. (유쾌한 목소리로 읊는다. 햄과 샐러드 있는 접시도 가져온다.) 네가 원한다면. 스스로 오블리비아테를 걸 수는 없지만 깨트릴 수 없는 맹세는 할 수 있어. 하고 싶은 일이 아예 없어? 네가 약초학을 잘한단 소문 있던데.

 

이본 카일리 17

누구에게, 왜 보여줘야 하는데? 왜 이렇게 조급해, 하루빨리 성공하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이 정도면 다음 플랜도 정해뒀겠지. 이번엔 뭘 할 셈이야. (우유 몇 모금 더 마시곤 턱 괸다. 식욕 없어.) 끌리기는 하는데, 됐어. 남이 네 죽음을 함부로 쥐게 하지 마. ⋯나 관련해서 도는 얘기 중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헛소문이야. 난 약초학 잘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 다른 일은⋯ 모르겠네. 너무 한 가지만 보고 살았더니 눈 돌리는 법을 모르겠어서.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당연히 소피아에게지. 당신께서 영국에 들어오는 일에 성공하셨듯, 나도 기어이 마법 사회에 편입했노라고…. 머글 수명이 좀 짧니? 마법 정부, 퀴디치 연맹.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루트야. 이것도 약간 아슬아슬하지만…. (안 먹어? 양배추 포크 찍어준다.) 너니까 믿고 맡기는 거지. 네가 정말 날 죽이고 싶어할 리는 없잖아. 여태까지 보고 살아온 건 정확히 뭔데?

 

이본 카일리 17

내 귀에 들린 너희 할머니는 본인 꼭 닮은 손자가 성공하는 꼴 못 보여줬다고 실망할 분은 아니었는데. 가족애야, 인정 욕구야? (포크 받아 든다.) 너무 커다래졌어, 예전의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는 꿈 많은 어린애였는데⋯. (부러 풀네임 언급하고는 아삭 씹었다.) 웃겨⋯ 호그와트에 나를 믿을 인간은 너밖에 없을걸. 죽이지 않겠다는 말까지 거짓말이면 어쩌려고. (뜸.) ⋯내 꿈이지⋯.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싶다는.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글쎄, 둘 다? 소피아는 안 실망하겠지. 이건 내 욕심이야…. 우리 같은 ‘슬리데린’이니까,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잖아. (그러니까 이것도 일종의 꿈이다. 이본이 가진 것과 닮았으면서 다른….) 미미. (투덜대며 곧장 정정해준다. 방울토마토도 포크로 쿡 찔러 입 앞에 가져다 댄다.) 그럼 내가 운이 나빴던 거고.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는 연기자라면 좀 속아줘도 괜찮아. (기다린다.) 하면 되잖아.

 

이본 카일리 17

⋯⋯너는 누가 뭐래도 완벽한 슬리데린이야. 아쉽게 되었지, 내가 이상적인 상태였다면 너를 지지해 주고 싶어 했을 텐데. 서둘러, 미미. 꿈 못 이뤄서 망하는 꼴 보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거든. (투덜거림에 헛웃음 흘리곤 포크 밀어냈다.) 뭐든 내게 쥐여줄 생각은 관둬. 너랑 동류로 남고 싶어졌으니까. (시선만 굴려 바라본다.) 가능하다고 봐?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그거,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중 하나네. (씨익 웃는다.) 뭐, 실패하면 너한테 가서 징징대야겠다. 위로 좀 해달라고. 그럼 같이 술잔 건배하고 빌어먹을 세상 욕이나 할까? (포크 밀어내면 별말 없이 토마토 대신 먹는다.) 응. 근거라도 대줄까?

 

이본 카일리 17

얼씨구, 아무리 장난이래도 벌써 실패를 가정하지는 마. 건배도 안 하고 세상 욕도 같이 안 해줄 거야. 성공하고 돌아와서 나 배알 꼴리게나 만들어 봐. (뒤쪽으로 무게중심 기울인다.) 응, 해봐.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네가 더 성공하면 배알 꼴릴 일도 없다니까. 자, 들어 봐. 우선 날 알아보는 사람 중에서 눈썰미가 좋지 않은 사람 없단 건 다들 익히 아는 사실이지. 악착같이 보상을 타내야겠다는 야망이나, 머글 태생을 멀리하지 않는 대담함도 있고, 나랑 장난을 공모해줄 정도로 창의력이 뛰어난 데다가, …전학도 안 갔잖아. 어디선가 봤는데 부자의 덕목은 끈기래. 무엇보다도, 내가 지난달에 과제 하느라 동기들 찻잎 점을 다 봤는데, 네 게 가장 좋았어.

 

이본 카일리 17

내가 전학 갈 것 같았어? ⋯⋯뭐, 좋아. 전부 그런 셈 치자고. 찻잎 점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데? 참고로, 내가 학기 시작 날 봤을 때는 돼지가 나왔어. 기분 나빠서 교실을 다 엎어버리고 나왔지⋯. 그날에 그냥 너랑 교실 폭파해 버려야 했던 건데.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나였더라면 그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마법사 학교가 많지는 않으니까…… 너 프랑스어 할 줄 알아? (실없는 소리.) 금성의 위성을 봤지. 아니다, 목성이었나? (점술 낙제생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금성은 위성이 없으므로 당연히 미미가 본 것은 목성의 것이다.) 돼지가 왜 나쁜데?

 

이본 카일리 17

보바통? ⋯아니, 전혀. 내 이름 때문에 그쪽이랑 무슨 연관성이 있으려나 했는데, 그냥 할머니가 주목나무를 좋아한다더라. (역시나 점술 낙제생. 제가 외우고 싶은 것만 찔끔 외워뒀다.) 그게 무슨 뜻인데? 돼지는 탐욕. 그냥, 놀리는 것 같아서 기분 별로였어.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아하. 거기서 따오셨군. 뭐, 성인 이름에서 따온 나보단 낫지. (어깨 으쓱인다.) 몰라, 무슨 뜻인지. 근데 별이 네 길을 이끈다는 건 좋은 거잖아. 탐욕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돼지가 죽은 것도 아니고.

 

이본 카일리 17

이왕 짓는 거 좀 더 멋들어지는 이름 주면 좋잖아. 패트리샤나 다프네 같은 거. 난 네 이름도 썩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짧게 침묵한다.) ⋯⋯방금 우리가 왜 낙제생인지 제대로 이해해 버렸어. 아무튼 나는 별로야, 별이나 말발굽 모양 같은 게 나오길 바랐단 말이야. 네 것도 봤지? 네 건 뭐래?

 

 

 

이본 카일리 17

그러다 다 모으면 어떡해. 내가 카드 돼버리잖아.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그럼… 더 좋은 거 아니야?

 

이본 카일리 17

뭐라고 써져있을지 모르겠어서 무서운데. 네 카드나 만들어주라. 없는 거 줄게.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이본♡카일리 카드. 물색 눈동자의 아름다운 여성. 슬리데린에 재학 중인 어린 마녀로, 연기에 재능이 있고 우아하다. 미인은 잠이 많다는 핑계를 들어, 최근 수업 중에도 주무시는 채로 발견되었다…. (제멋대로 읊는다. 낄낄거리며 제 카드 쥐여주고 전 세트 만들어버린다.) [양도/멀린, 아이락 풀케, 헬가 후플푸프 카드]

 

이본 카일리 17

아 뭐지 진짜?? 난 네 카드 보고 싶었다니까?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그래. 네 마음 잘 알겠는데 나는 네 카드가 보고 싶었어. (하하!)

 

 

 

이본 카일리 17

깜찍하게 뭉개기?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동물 귀 물약 먹여주고 간다.)

 

이본 카일리 17

아 나한테? (멀어지는 15센티미터 본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그럼, 이게 형제애지. (느리게 멀어진다.)

 

이본 카일리 17

하... (미미 손에 얹고 기숙사 들어간다...)

 

 

 

이본 카일리 17

죽으란 법은 없다니까⋯. (옷 털고 간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마음에 들어?

 

이본 카일리 17

너무. 너는 고민이 많아 보이던데.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17

고민이 많은 게 아니야, 이본. 너무 명료해서 우울한 거지. 너라도 기분이 낫다니 다행이다.

 

 

 

성인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28

어휴, 이런 데서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 많네.

 

이본 카일리 28

그러니까 좀 조용히 지내보지 그랬어, 배반자. 너희가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안 올 수가 있어야지.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28

배반자, 동족의 배신자, 변절자…. 요즘 따라 나를 칭송하는 수식어가 참 많이 들려오네. (제 귀 만지작댄다.) 조용히 지내는 건 성미에 안 맞아서. 이제는 안 안아주나, 이본?

 

이본 카일리 28

그러게 줏대 있게 버텨보지 그랬어, 충성심 인정받아서 적당히 높은 자리 차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헛웃음 짓는다.) 하여간 요란스러워, 네 얘기 너무 자주 들려. 적한테 포옹 받아서 뭐 해?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28

날 알잖아, 적당히 높은 정도로는 만족 못 해. 게다가 안타깝게도 머글 태생에게는 그런 자리까지도 안 줬을 것 같은데. (양팔 벌린다.) 옛 추억 읊으며 시시덕댈 용도?

 

이본 카일리 28

하여간 현실에 안주하는 법을 몰라, 나나, 너나. 너랑 동등하고 싶다는 게 이렇게 만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어.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포옹한다. 짧게 안고 떨어졌다.) 속도 좋군. 추억 회상할 여유가 있어?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28

아직 둘 중 누구도 성공을 거머쥐지 못했네. 음, 아닌가? 너 거기서 입지 좀 괜찮아?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 (꽉 끌어안았다가 놓는다. 이것도 십 년 만이다.) 네가 지팡이를 휘두르기 전까지는 있지. 너 지금 나 공격할 거야? 선전포고 좀 부탁해.

 

이본 카일리 28

내 소식 모르려나? 나 떳떳하게 돈 벌고 다니는 건 아니거든. 겉으로 보여지는 게 가장 중요한 인간들이 나를 곱게 볼 리 없지. 나도 성공하려고 여기 온 거야. (고개 기울인다. 글쎄, 어쩔까. 건조하게 툭 내뱉었다. 농담이다.) 이렇게 만나고도 그게 좋은 추억이 돼? 너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나.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28

하하, 그렇구나. 겉으로 보여지는 게 중요한 인간들 앞에서, 이렇게 구시는 연유는 뭐고? 차려입고 비위 맞춰주는 방법도 있었잖아…. 술도 끊고 말이지. (떨어졌는데도 알코올 잔향이 남아있다. 코끝 찡그렸다.) 조금은 참아줘. 다른 애들도 없이 우리 둘뿐인데. 나야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 좀 달라 보이나?

 

이본 카일리 28

글쎄, 연기하는 것도 이제 질렸나 보지. 비위 맞춰주나 마나 어차피 그렇게까지 좋은 대우는 안 해줬을지도 몰라. 같은 혈통 안에서도 가진 놈이 우선이라. 야, 술은⋯ 난 그거 없으면 안 돼. 너도 거기 있으면서 당기던 날이 좀 있었을 거 아니야. 틀려? (빤히 바라본다.) 굳이 찾자면, 7학년의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랑은 좀 다르기는 하네. 그때의 넌 좀 조급해했으니까⋯ 사실 더 조급해야 할 때는 지금이 아닌가 싶은데도 말이지. 지금 그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거야?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28

누구 죽은 날에는 항상 술을 진탕 퍼마시고 싶지. 진짜 취할 정도로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말이야…. 도망 다니는 처지에는 그것도 과분해서.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에는 말이다…. 고개 설렁설렁 끄덕인다. 의존증 아냐, 너? 가볍게 묻는다.) 미미 파블라디스라고 불러주면 더 좋겠네. 음, 그 사회에 순응하기를 포기했으니까. 거기 끼고 싶어서 안달일 때에나 불안하거나 조급해했지. 뭐, 반란이 마음 급하게 먹어서 될 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래도 지금이 더 보기 좋지 않아? 좋아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본 카일리 28

적절한 취기를 유지하면 잡생각도 안 들고, 부정적인 감정 외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이성적으로도 생각할 수 없게 되지만 말이야. 말하고 보니 권하고 싶어지네. 마실 생각 없어? 꽤 챙겨왔는데. (아마도. 가볍게 답한다.) 그놈의 애칭. 이미 서로 지팡이까지 겨눠본 상태에서 살갑게 굴어봤자 뭐 좋다고. ⋯심지 꼬인 인간한테 무슨 좋은 소리를 바라. 반란하기로 마음먹은 후로, 후회한 적은 없었어? 말하는 거 보니 동료 잃어 본 경험이 한두 번 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28

한잔하고 싶은데, 의존증이라고 시인하는 사람과 마시기는 좀. 난 아직 너를 걱정하거든. (눈알 굴린다.) 내가 후회하는 것들은 좀 더 짧은 단위의 것들이야. 더 빨리 갈걸. 그때 방어 마법을 쓸걸. 정확도를 포기하고서라도 무언 마법을 고수할걸. (틈.) 선택 자체는 후회 안 해. 후회할 수가 없어. 이것 말고는 낭떠러지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내린 결정이기도 하고. 그걸 안 믿으면 뭘 믿겠어? (깊은 자기애나 자신감 따위, 늘 그렇듯 근거는 없고….) 넌 발푸르기스 기사단에 들어간 걸 후회해?

 

이본 카일리 28

얻어맞아 놓고 걱정은 무슨. 진짜 안 마실 거야? 네가 걱정 안 해도 난 당분간 못 끊게 생겼어. (잠시 입 다문다. 반면 이쪽은 자기애나 자신감 따위는 잊은 지 오래고⋯.) ⋯마찬가지야, 난 후회할 수 없어. 이게 아니면 낭떠러지 아래에서 올라갈 방법도 없을 테니까. 내 후회는 더 오래전으로 가지. 아빠 따라 도시를 구경하러 나가지 말걸, 거짓말을 들키지 말걸⋯ 이런 거. (간극.) 우리 둘 중 하나만 야망을 이루게 생겼군. 할머니랑 요즘도 연락해?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 28

너 마시면 마셔야지, 별수 있나…. 부상자들이 나란히 술도 마시고, 치료사들한테 안 들키게 조심해야겠네. (실실 웃으며 대꾸한다.) 몰랐는데, 그게 네 계기였나 봐. 성공해야겠단 꿈 갖게 된. 설명해줘, 어린 너한테 어땠는지 듣고 싶어. (고개 젓는다.) 아니, 구 년쯤 됐나. 머글 태생 마법사의 가족이라니, 너무 공격하기 좋잖아. 이사 보냈어. 어디서 지내는지 나도 몰라. 다 끝나고 나면 찾아봐야지….

 

이본 카일리 28

지금 여기 있는 치료사나 의사들만 해도 거의 다 술이랑 친구 먹은 것 같던데. 쟤들 핑계 대서 빠져나가지 뭐. 안 마시기엔 아쉬운 놈으로 들고 왔거든. 원래 축하주로 마시려던 거였지만⋯. (지팡이 휘둘러 술잔 둘과 값나가는 레드와인 손에 쥔다.) 내가 고립돼서 살았다는 얘기는 했나? 살던 곳이 깡촌이었거든, 주변에 사람도 하나 없고 너무 심심해서⋯ 아빠가 약초 팔러 나가는 날 데려가 달라고 그랬지. 다이애건 앨리 처음 가보니까 다들 멋진 옷 차려입고 새 물건을 턱턱 사는 거야. 충격이었어,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고. 별거 없지? 지금 와선 그 기억이 저주스럽더라고. 넌 마법이 왜 좋아? (네게 잔 쥐여주곤 적당히 따라주었다.) 머글들의 생은 짧다면서, 빨리 찾아야겠네. 짐작 가는 곳은 있고? 너랑 할머니랑 아주 닮았다니 오래 걸리지는 않겠다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