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ue Hope @아서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코카투가 조잘거리는 음 사이로도 단언이 똑똑히 귀에 박혔다. 문장 하나가 납작한 반항심을 들끓게 했다. 사실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는 교활하거나 얄팍하게 굴지언정 그 심지는 퍽 단순한 사내로, 치기 어린 욕심이 이리저리 뭉쳐 사람 형태 만들어둔 것에 가깝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소피아 박사에게, 슬리데린에게, 마법사들에게. 다양한 이들이 그 대상 되었으나 기이할 정도로 아서 펜버만은 부재했다.

      애정의 정도보다는 필요의 문제다. 머글 가정 출신이라는 자못 특이한 이력에도, 그는 오직 슬리데린이었던 까닭에 일찍이 손쉽게 아서의 선 안에 들었다. 마법사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목하에 나열되었는데, 미미는 그 특혜 누리는 기분이 꽤 좋았다. 통금 시간이 되면 자신을 찾기 위해 복도를 훑는 키위색 시선도, 잔소리하면서도 과제를 보여주는 다정함도, 방학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집에 드나들며 '진정한 마법사'들 사이에서 어울리는 일도. 그의 감정은 시간과 비례하는 모양이다. 그럼 가장 안쪽에 있는 가족을 제외하고서 룸메이트인 사내를 이길 인물은 없어 보였다. 요컨대 절친한 친구 사이, 용인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아마도.

 

 

 

      몇 년간 연락하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뒤따른다. 불사조 기사단과 내통했단 기록이 좋게 작용할 리 없음을 염려해서, 어차피 상대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알아서, 오지로 떠났으니 연락이 용이하지도 않을 것이라 짐작해서…. 미미는 교만하게도 제 친구의 마음을 자신이 다 셈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여 생각하기를, 이 전쟁이 다 끝난 다음에도 우리 관계가 깨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조금 미움을 살 수는 있겠으나, 평소처럼 보란 듯 아양 떨어 무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이 그리워한 만큼이나 상대 또한 그랬을 것이라고. 선견은 대차게 실패했고, 그 결과가 모질다.

 

      전장의 매캐한 먼지는 손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피부 겉면의 숱한 상처 위로 쌓여 앙금으로 남는다. 암녹색 커튼이 강의실의 작은 창문들을 죄 가려두었으니, 이곳은 그늘이다. 햇빛도 없고 들불도 없이 오래도록 체념한 이의 초연한 낯을 내려다본다. 터져 나오는 숨은 미련 남은 자의 것이다. 한숨을 길게 내뱉고도 마음이 다 사그라지지 못했다. 

      "싫으면?"

 

      "되돌릴 길은 없나."

      디미트리오스가 적당히 납득하거나 타협할 줄 아는 이였다면 애당초 문제가 이렇게까지 지지부진해질 일은 없다. 엔야 힉스가 그에게 가르치고 간 덕목은 하물며 절충하지 않는 심리로, 기사단에서의 행적으로 그는 몸소 배운 것을 실천해왔다. 그러니 되묻는다. 옛 우정에 기대어 매달린다.

      "내가 네게 빌어먹을 친구로 여겨질 일은 이제 없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