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forward

 

 

엔야 바이오에 올려두신 곡 훔쳤습니다.

 

      런던 베드포드 스트리트에 구한 작은 집은 둘이 살기에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이제 막 성년이 된 애들을 등쳐먹으려는 집주인 몇을 '마법사식'으로 혼내주지 않고 참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나, 남자는 그 정도 인내심은 발휘할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그 사기꾼을 어르고 달래 그럴듯한 자취방 적당한 가격에 계약하는 일에 성공했으니 자제력이란 것도 썩 나쁘지 않은 덕목이다. 
      바닥이 삐걱거리는 건 조금 거슬렸으나 카펫을 깔아두면 그럭저럭 해결되었다. 물이 새거나 수압이 끔찍하지도 않았고, 몸을 구겨 넣어야 들어갈 법한 작은 욕조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집의 좋은 점은 다이애건 앨리와 가깝단 점이다. 마법 사회 바깥에서 온 이 마법사 둘은 대단히 안타깝게도 그 세계에 온 마음을 다 줘버렸는데, 그 탓에 마법 학교를 졸업한 뒤로도 그 주위를 빙빙 맴돌게 됐다. 아무쪼록 직장과 가까운 집의 특혜가 보통 그러하듯, 출근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디미트리오스가 문틀에 기대서 방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짧은 대답 들려오면 문 벌컥 연다. 잔뜩 뻗친 금발의 여자가 침대 위에 앉아서 옷을 개고 있었다.
      "네가 옷 정리를 하는 법을 알았다니 신기한데."
      곧장 얼굴로 넥타이 하나가 날아왔다. 피할 새도 없이 얻어맞은 사내가 웃는 소리를 냈다. 학창시절에 몰이꾼을 했어야지, 에냐. 장난스러운 타박이 이어진다.

      "그런 얘기하려고 불렀냐?"
      "아니, 진짜 출근 안 할 건지 궁금해서. 동생 혼자 나가려니까 외로운데."
      "그럼 그 난리를 치고 돌아가게 생겼어? 그대로 잡혀가지나 않으면 다행일걸."

      기실 그렇기도 했다. 발푸르기스 기사단에 입단하란 통보를 두고 누이가 순순히 응하리라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대로 깽판을 치고 튈 줄은 몰랐다. 미미는 여태껏 엔야와 함께 거주한단 사실을 마법 스포츠부 동료들에게 밝힌 바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했다. 물론 호그와트 동기들과 어울리면서는 거취 흘렸겠으나….
      '위험하려나.'
      동문이라고 해서 전부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질부터가 머글 태생이니 배척되더라도 놀랍지 않다. 디미트리오스가 제가 얻을 법한 불이익을 셈하고 있으면, 엔야가 고집스러운 얼굴을 고수한 채 툭 뱉었다. 
      "떠날 거야. 넌 여기 계속 쓰든지 해. 계약 기간도 남았고."
      "한 달이면 끝나."
      "끝나면? 넌 남을 거잖아."

      직접 물은 적은 없어도 둘은 서로를 잘 알았다. 엔야는 디미트리오스가 기사단에 입단했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빼닮은 남매를 가르는 선 있다면 바로 이런 태도다. 태어나길 사자인 마녀는 굽히느니 꺾이는 것을 고수했는데, 눈앞의 사내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존심 따위 없는 사람처럼 굴었고, 원하는 바를 위해 남들 앞에 바짝 엎드릴 줄 알았다. 우정이나 형제애 매번 읊는 것치고는 제 손익 계산에 밝았으니 어떤 대답이 들려올지는 뻔했다. 수긍할 테다. 그럼 언젠가 저 얼굴에 지팡이를 겨누게 되는 날도 올까? 최악의 미래를 가정하면 속이 뻐근했다.

 

 

      "…글쎄, 모르지."
      디미트리오스가 제 빨간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대꾸했다. 이건 예측한 범위 내의 답변이 아니다. 미미 스스로도 내뱉고는 의아하게 여겼는데,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오죽 그랬을까.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발푸르기스 기사단에 입단한 것까지는 좋았다. 게걸스럽게 탐내고 집어삼키는 것은 그의 특기기도 했다. 피만 빼고는 무엇이든 맞춰줄 생각으로 입단에 응했고, 그렇게 해서 성공할 수만 있다만 굴종도 개의치 않았다. 다만 때로는 그의 혈통이 그어둔 한계에 짓눌려 죽을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정말 성공할 수 있겠느냔 의구심이 치민다. 숨이 막혀온다. 이게 다 엔야 힉스랑 지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성질머리가 전염되기라도 한 것 같다.
      "나도 누나처럼 뛰쳐나올 수 있잖아."
      "…그래도 난 떠날 거야."

      "알아, 그냥 짐 정리 천천히 하라고. 당장 퇴근하고 돌아오면 없어져 있을까 봐 그래. 조금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잖아."
      엔야가 입을 벙긋이다가 닫았다. 옷을 탐지 불능 가방 안에 쑤셔 넣던 손이 멈췄다. 마녀가 그러든 말든 디미트리오스가 천연스럽게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저녁 좀 차려두지? 이제 난 공무원이고 넌 백수잖아."
      옷가지 하나 더 집어 던지기 전에 미미가 냉큼 문을 닫았다. 하하! 삭슈카로 부탁해! 웃는 소리가 방문 밖에서 들려왔다.

      불이 옮겨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