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like before @세이지

 

 

      그토록 수다스럽던 사내가 조용하다. 침묵하는 얼굴이 자연스럽다. 그는 스스로 숨기려던 것이 없다고 말했으나 마녀는 이미 안다. 저것이야말로 뱀의 허물 벗은 민낯이다.
      기실 대화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원하던 상대의 호의도 얻지 못했고, 이해는 실패했다. 그는 제 것을 마녀의 손에 들려주어서라도 거리를 좁히고자 했으나 이 관계는 가파르게 망가졌을 뿐 조금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유쾌해지는 이 기분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악의를 그러모은 문장이 완성되고 나서야 옹송그렸던 등을 편다. 캔버스화의 닳은 밑바닥이 복도를 긁었다. 가자, 기숙사로. 말하지 않아도 그런 눈빛으로 지하를 턱짓한다. 
      "괜찮아. 너무 쉬우면 재미가 없잖아."

      두 사람은 열넷에 불과하다. 그 중 삼 년이면 오죽 큰가. 무언가에 반하기에도, '스스로'를 형성하기에도. 문득 소년은 그 자신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찰한다.
      아, 바야흐로 사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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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게실에 이르러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는 밀린 방학 과제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이제 와서 해결한다고 해봤자 실상 룸메이트의 것을 베끼겠지.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가끔 남자는 평판을 추락시키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굴었다. 세이지가 불만스러움을 애써 숨긴 표정으로 벽난로 앞 소파에 앉았다.

      "다행이다. 아직 있네."
      계단의 난간을 타고 미끄러지듯 소년이 돌아온 것은 조금 뒤의 일이다. 양피지와 만년필 하나, 잉크통과 교과서 따위를 그가 품에서 내려놓았다. 아까 전의 대화란 백일몽에 불과한 것처럼 태연한 얼굴이다.
      "왜? 노력하는 것 가지고 트집 잡으면 안 되지. 도와줄 거지?"
      같은 슬리데린이잖아.

 

 

 

*편히 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