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ther be

 

 

 

 

새빨간 머리카락이 바람을 헤집었다.

그 이질적인 소년으로부터 시선을 떼는 일은 응당 어려웠다.

 

 

 

      마빈 스트리트 21번지부터 24번지에 사는 파블라디스 가족은 자신들이 유쾌하다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이하거나 신비스런 일들을 즐겼으며, 터무니없는 것을 사랑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민을 결정한 것은 그 때문이다.

      편지가 날아왔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내용의 영문 편지다. 더럼 대학교의 전임교수직에 지원한 것은 소피아의 독단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이었는데, 바다를 건너 날아온 초청장을 보고서는 그조차도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우조가 담겨있던 유리잔이 찰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무 테이블 위를 굴렀다. 새빨간 곱슬머리의 여자는 술이 카펫을 적시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웃음을 터트렸다.

      남편의 동의는 아직 구하지 않았고, 그 다정한 보수주의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했다. 그가 읊어댈 걱정거리들을 줄줄 읊을 수도 있었다. 영국은 상상하지도 못한 동네다. 거긴 테살로니키의 따뜻한 햇볕도 부재할 것이고, 아는 지인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을 예정이다. 영어는 할 줄 알았지만, 실생활에선 단 한번도 써보지 않았다. 런던도 아닌데 그리스식 음식점이 몇이나 될까. 좋아하는 스티파도를 먹기 위해선 직접 요리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소피아는 50대에 가까워지는 중이었고, 이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심지어 평생 몸담았던 고향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아가고 있다면 더더욱! 헤어지자고 할까? 어쩌면 이혼당할지도 몰랐다. 

      심장이 뛰었다. 가슴 위에서 뱃고동이 울린다.

 

       셋째 딸애가 유리잔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문을 벌컥 열었다. 꼬물거리는 신생아 하나를 담요에 싸서 안은 채다. 조그마한 머리 위로 솜털처럼 자라난 빨간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무슨 일 났어? 엄마, 무슨 낮부터 술을 먹다가 그래?"

        소피아가 아기 포대기를 대신 안아 들고 딸에게 편지를 쥐여줬다. 소피아 파블라두 박사에게, 교원 채용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가 보내주신 서류는 모두 확인했으며, 이어질 총장 면접 일정을 안내해 드립니다….

 

      "영국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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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는 제 손자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일찍이 알아차렸다. 그에게는 손주가 여섯이나 있었지만, 미미는 그중에서도 유별났다. 마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미를 미루어 짐작하는 말이다. 놀랍게도 디미트리오스는 조숙했다! 물론 그의 학창시절을 익히 본 우리가 예측하듯, 안타깝게도 그것이 조용하고 모범적인 아이라는 뜻은 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남자앤 다른 방식으로 주의를 끌었다. 소피아가 연구에 매진하느라 예민해져 있으면, 기민하게 반응하고 사고를 터트려 이목을 분산시켰다. 차라리 다른 손주들을 질투하여 관심을 돌리려는 수법이라면 이해할 법도 한데, 애정엔 별 흥미도 없고. 보통 아이들처럼 안아달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보채는 일도 없었단 뜻이다. 대체 뭘 그리 갈망하는지 들여다보면 원하는 것은 한결같았다; 자기 과시. 그 앤 페인트에 범벅된 상태로 개구진 웃음을 지으면 '파블라디스'들이 자길 귀여워한단 걸 알았고, 혼나면서도 잔소리에 미움이라곤 한 줌도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걸 좋아했고, 사람들에게 요란하게 기억되기를 원했다. 대뜸 이민을 하자는 맹랑한 의견에도 깔깔거리며 동의할 정도로 박사의 자식들은 모두 그를 닮았으나, 소피아는 한 세대 건너뛴 디미트리오스에게서 종종 유년기의 자신을 보았다.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제 평생을 두고 떠나는 게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젠 가진 것을 잃고 싶지 않다. 손주들이 자라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일과는 또 달랐다. 매일같이 보는데도 더 빨리 자라는 것 같다. 요즘 애들은 더 좋은 걸 먹고 커서 그런가.

      딸들과 아들은 어머니의 품을 떠나지 않았으나 그의 자식들은 여기에 매여있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훌쩍 바다를 건너고 새 세계를 찾아 떠날 것이다. 갈망을 배우고 기어이 움켜잡을 테다. 소피아는 차츰 각오했고, 그리하여 웬 마법사가 집안으로 순간 이동해 벽난로에 머리를 박았을 때에도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박사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털털하게 시인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마법이란 단어는 여전히 낯설었고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아직도 세계는 한참이나 넓었다. 꼬깃꼬깃한 편지에는 멋들어진 잉크로 적혀 있었다. 친애하는 디미트리오스 파블라디스에게, 귀하께서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려 드립니다….

      차례가 넘어간다. 소피아로부터 디미트리오스에게로.